임금체불 당하고 만든 호박죽
~서울와서 코베인 자의 분노의 호박죽~
2019년 10월 어느 날, 임금체불 당했다. 식욕이 없었다.
사실 차려먹기 귀찮았다.
갑자기 죽이 먹고싶었다.
집 근처에 본죽이 있어 갔는데 죽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리고 병원 근처라 그런지... 대기손님도 많았다...
그러나 출발한 이상 나에게 빠꾸는 없다.
참치야채죽과 호박죽, 다 살까하다 식으면 노맛이기에 호박죽만 샀다.
본죽은 소분이 된다. 과거엔 3개 까지 소분을 해줬던거 같은데, 이제는 용기 2개에 나눠준다.
근데 항상 한 끼에 다 못먹을 것 같아서 소분해오면 앉은자리에서 모두 박살냈다.
이번에도 나는 소분을 해왔고, 역시나 앉은자리에서 끝장을 냈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음 끼니에 또 생각이 난다거나 다음 날 또 먹고싶다.
이 때는 호박죽이 그랬다.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인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박죽......호박..죽..
그래서 외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장을 봐왔다.

이걸 사면서 부터 생각했다.
"아, 사먹는게 더 빠르고 저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후진기어는 없다.
이번에 만들고 실패하면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거기에 찹쌀가루는 용량이 제일 적은걸로,
소금과 설탕은 한 번 개봉하면 보관하기 어려운거 말고 용기에 들었으면서 가장 적게 든걸로 골랐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호박을 어떻게 조리해야 할 것 인가?
나는 자취생이고, 그 흔한 전자렌지 마저 없다.
거창하게 계획은 모두 있었으나, 임금체불로 무산되었다.
그래도 나는 호박죽을 완성해야한다.

전자렌지가 없기에 호박을 일단 삶아보기로 했다. 삶으면 껍질 까기가 쉬울거라 생각했기에...
늙은 호박은 감당할 수가 없어 단호박으로 샀다. 단호박도 크기가 자유롭던데...
이번에 고른 단호박은 다행히 냄비에 딱 알맞는 사이즈였다.
물을 끓이면서 내 시리얼그릇과 물컵에 찹쌀가루를 적당히 덜었다.
시리얼 그릇에 담은 찹쌀가루는 호박죽에 들어갈 새알용
물 컵에 담아놓은 건 호박죽을 좀 걸죽하게? 만들용이다.

냄비에 물이 끓으면 호박을 바로넣지 않고, 농도를 맞추기 위해 뜨거운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새알반죽을 만들었다.
농도는 새알 반죽이 만들어질 정도로 맞추면 된다.(?)
그리고 왠지 새알을 먹었을 때 짭짤한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소금도 좀 뿌려버렸다.

호박죽 농도 맞출 찹쌀 풀?은 물인데 약간 걸죽하게 가루가 덩어리지지 않고 풀릴만큼 만큼 만들었다.
블로그를 쓰다보니 알았는데, 새알은 뜨거운 물로 만들고 풀은 실온에 있던 생수로 만들었다.
왜 차별했을까? 앞으로 차별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새알 농도를 맞추고 시간 단축을 위하여 호박을 바로 넣어버리고 새알을 만들었다.
호박이 익었는지 수십번 젓가락으로 찔러봤는데,
호박은 젓가락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나도 그런 쉽게허락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호박죽 그냥 사먹을 껄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

임금체불 당하고 단 한푼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그래서 관리비를 까먹지 않으려 책상위에 고지서를 올려놓았었는데 호박죽만드느라 그만 기일이 지나버리고말았다.
덕분에 호박죽을 만든 날짜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2019년 10월 31일에서 11월1일이 되어가는 자정쯤..
나는 왜 오밤중에 이걸했을까? 납부기한 20분정도 지나서 눈물훔치며 천원을 더 이체했다.

호박을 젓가락으로 찔렀을 때, 아까와 다르게 호박은 젓가락을 쉽게 허락해주었다.
이것은 호박이 약해진 것인지, 나의 연체료파워와 젓가락의 콜라보로 한 차례 더 강려크해졌는지 저는 알지 모답니다.
나는 프로 자취러라 칼은 과도 뿐이고 도마는 글래드 매직랩이다.
호박을 반으로 절단내버리고 속에 숨어있던 씨들과 단단히 감싸고있던 껍질을 박살을 내버렸다.
내 코를 베어버린 임금체불사업주도 박살내고싶다. 다시는 과도를 무시하지마라!

호박을 냄비에 넣고 호박이 2/3정도 잠길정도 물을 넣고 무자비하게 끓여줬다.



호박이 끓으면 더 빨리 죽이 되버리라고 숟가락으로 계속 부시고 젓고 반복했다.
나름 죽 형태를 갖췄다. 아마 믹서기가 있었으면 더 곱게 작살을 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이 과정에서 한 10분 이상을 불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양이 확 줄어버려서 물을 더 넣고 찹쌀가루 물 푼것도 넣어줬다.
넣자마자 거의 바로 호박끓여 쪼개 박살 낸 물이 제법 죽처럼 걸쭉 해졌다.

한 번 팔팔 끓고난 뒤 새알 만든걸 넣어줬다. 비주얼은 제법 그럴싸해졌다.
새알 넣고 약불로 바꾼 후 슬슬 저어주면서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했다.
뜨거울때 간을 맞추려고 하니 고혈압의 지름길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맛은 좋았으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로 자신과 쇼부봤다.

전 날 사먹었던 본죽 호박죽 통은 파김치 보관통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있던 그릇도 찹쌀가루 범벅이 되어버려 컵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가능한 가득담아 다 먹어버렸다.
새알을 처음엔 작게 만들다가 만들수록 귀찮아져 좀 크게만들었더니 식감이 별로였다. 푸석푸석
그래도 파김치랑 먹으니 맛있었다. 반찬먹는느낌.

이렇게 만들면 두 끼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단점 : 죽이라 배가 빨리 꺼져서 다른거 먹게됨, 시간 오래걸림, 다리아픔, 인건비+가스비 하면 사먹는거보다 쌀지 의문
장점 : 설거지 적게나옴